title : 2019 10.6. 성신강림 후 제17주일, 샤잘 신부님 미사 강론
name : silviadate : 2019-10-10 11:17:00hits : 46
 제일 큰 계명
성신강림 후 제17주일
2019106

바리사이들은 우리 주님의 말씀에서 두 개의 질문으로 우리 주님을 함정에 빠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제일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그다음에 그대가 천주요?” 그다음 계획은 보시오, 그는 제일 큰 계명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는군요,”라고 말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조롱하는 것이었습니다. 참 훌륭한 계획이었죠....

...하지만 계획은 두 가지 이유로 크게 틀어졌습니다. 첫째, 우리 주님은 그들에게 천주성을 지니고 있다고 예언된 메시아에 대한 난문제에 답하라고 요구하십니다. 메시아가 오리라고 믿는 그들은 그가 천주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둘째, 천주는 느닷없이 천주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천주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그 사실을 초월하는 뛰어난 이유로 천주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천주는 우리에 대한 천주의 사랑을 갚기 위해 천주를 사랑하라고 주문하십니다. 마치 부모가 자기 자녀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처럼요.

따라서 메시아가 첫 번째로 하실 일은 우리에게 메시아를 사랑하라고 요구하시는 게 아니라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 특히 당신의 수난으로써. 그런 다음에야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그토록 사랑했으나, 그 보답으로 특히 사랑의 성사에서 능욕과 무시와 경멸을 받는 성심이다.”(성녀 말가리다 마리아에 주신 유명한 말씀)

그리고 죄인들이 다시 죄에 떨어져 천주께서 다시 그들을 용서하기를 바라시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의 배은망덕, 그리고 심지어 적대감 때문에 우리에 대한 천주의 사랑은 매우 특별합니다... 천주는 용서가 문제를 악화시킬 때 용서하기를 그만두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천주께서는 오늘날의 세상에 대해 얼마나 자제하시는지를 보여주고 계시지 않는지요? 오늘날의 죄는 극히 거대하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우리보다 더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천주는 욥과 토비아처럼 사랑하시는 자들을 벌하십니다. 욥과 토비아는 자기들이 의롭기 때문에 그토록 시험을 당하는 것이라고 똑똑히 들었습니다. 유명한 이야기지요.
이는 천주께서 당신이 종종 베풀어주시는 기쁨과 부와 명예 때문이 아니라 올바른 이유로 사랑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하나의 계명만이 있으며, 다른 계명은 그것과 유사합니다. 천주의 사랑을 인하여 이웃을 자기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계명 안에서 여전히 우리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에 주목하세요...그러니 우리는 영혼에 손해를 입히면서 이웃을 사랑하면 안 되고, 그저 육신을 희생하고, 안락함과 편안함을 포기하면서 사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어떤 성인들은 나약한 형제들의 영혼을 구해내기 위해 회교도에게 자신을 노예로 팔았습니다.

하지만 이웃에 대한 사랑은 제일 먼저 천주께 대한 사랑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 주께서는 마지막 심판에 대해 두 문장으로 그것을 똑똑히 밝히셨습니다. “나는 굶주렸고,...목말랐으며,...헐벗었다...”
우리 주께서 이 사실을 이웃이 실제로 누구인지 인식하는 순종에 대한 영원한 보상과 우리가 천주로 인해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영원한 불, 두 가지로써 얼마나 많이 뒷받침하시는지에 대해서도 감탄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이 이웃이 쓸모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모님을 제외하고 우리 주께서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셨을 때 우리도 모두 쓸모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니페로 세라 신부는 쓸모없는 캘리포니아 인디언들을 데리고 이것을 가장 잘 모방했습니다. “그들은 죽 때문에 기도와 교리문답을 하러 올 뿐이다...” 그리고 과연 그의 인디언들은, 데 스메 신부가 더 북쪽 지역을 복음화한 인디언들과 달리, 별로 쓸모없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천주의 사랑을 인하여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기적의 비결입니다. 식인종들은 선량한 군중으로 바뀌었고, 흑인들의 마음은 선량한 마음으로 바뀌었다고 르페브르 대주교는 말했습니다.

우리는 성 요한 보스코의 꿈 중 하나에서 보였듯이, 같은 기적이 다시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성인은 많은 이리가 양으로 변모한 것을 보았으며, 성인의 시대에 이탈리아 젊은이들에게 일어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성모님에게서 이것을 기대합니다. 성모는 당신의 천주 성자 안에서 죄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죄인들을 애지중지하십니다. 천주 성자는 죄인들을 위해 죄인이 되셨고, 죄인들의 모든 약점을 당신의 것으로 삼으셨습니다.

+ 샤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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