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9 8.4. 성신강림 후 제8주일, 피코 신부님 미사 강론
name : silviadate : 2019-08-07 11:32:31hits : 67
 성신강림 후 제8주일

201984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죽음은 홍해를 건너는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모세를 따르는 의인들은 이 장엄한 길을 지나 천국의 거룩한 땅으로 들어갑니다. 불의한 혐오감으로 그리스도를 괴롭히는 악인들도 역시 같은 길을 가지만, 그들은 거기서 영원한 죽음을 만납니다. 성인들의 죽음이 어떤지 생각해 봅시다. 이로써 성인들처럼 죽기 위해 성인들처럼 살려는 더 큰 열망을 얻을 것입니다.

복음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으로 행하신 첫 부활은 갈릴리에서 야이로의 딸을 위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셔서 딸을 고쳐 달라고 왕의 부관 야이로는 예수께 청하러 왔습니다. 애가 타는 아버지가 아직 예수와 함께 있을 때, 야이로의 하인이 야이로에게 달려와 소녀가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야이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오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어 주시면 아이가 살아날 것입니다.”

예수께서 야이로의 집에 들어가니, 가족과 친지들이 큰 소리로 울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그들에게 울음을 멈추라고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왜 우는가? 이 아이는 잠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되살리셨습니다.

이것은 간단한 기적에 관한 일화였습니다. 여기에 얽힌 의미, 가르침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 예수는 의인의 죽음이 잠이라고 가르치시려고 이 기적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소녀는 죽은 게 아니라 잠든 것이다.” 의인의 죽음은 잠입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생명이 끊긴 바로 그 몸이 마지막 날에 영원한 생명으로 충만하여 다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죽음은 최종적인 진짜 죽음이 아닙니다. 여정일 뿐입니다. 그리고 의인에게 그것은 더 나은 영원한 삶으로 가는 여정입니다.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죽기 며칠 전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나는 죽는 게 아니다.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영혼이 천국의 기쁨에 들어가 있는 동안, 육신은 마지막 날에 깨어날 때까지 흙 속에 뉘어 쉽니다.

2) 둘째, 예수는 의인의 죽음은 고통이 없다고도 가르치십니다. 지혜서에 다름과 같이 돼 있습니다. “의인들은 주님의 손안에 있어서 죽음의 고통이 그들을 해치지 못하리라.”

물론 의인들은 죽을 때 천주의 뜻에 따라 다른 모든 사람처럼 다소 고통을 겪습니다. 그들은 질병의 고통을 알고, 그들 중 혹자는 다른 길고 고통스러운 질병의 순교를 당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고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고통을 통하여 강해지고, 한층 더 그리스도와 일치하며, 삶에 대한 사랑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3) 셋째, 예수는 의인은 이 세상에 대한 미련 없이 죽는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들은 정말로 하루의 기나긴 노동으로 녹초가 되어 잠자리에 들어도 된다고 허가받은 아이와 같습니다.

그래서 선행에 헌신한 삶에 지치고, 세상의 악인들에 진저리치는 의인들은 현세의 삶에 조금의 미련도 없습니다. 의인은 신앙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주님 안에서만 안식을 누리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어떤 의인들은 임종 시에 큰 두려움을 체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조차 끔찍한 죽음의 처지를 미리 아시고 번민하는 동안 그것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의인의 평화로운 죽음은 두려움의 여지를 좀 남길 수 있습니다. 우선 영혼과 육신의 분리는 영혼과 육신 둘 다 결합한 채로 있으려 싸우는 끔찍한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성인들이 참으로 겸손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몇몇 성인들을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계속 그렇게 두십니다.

4) 마지막으로 그리스도는 의인의 죽음이 평안한 잠만큼 안심할 수 있는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안심할 수 있다함은 확고한 소망으로 가득 찬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 희망은 지나친 두려움을 가라앉힙니다. 그래서 성 힐라리오는 죽을 때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때 성인은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영혼아, 어찌 그리 두려워하느뇨? 내가 70년 동안 충실하게 섬긴 천주를 내가 두려워할쏜가?” 다시 말하건대 의인의 죽음은 잠자리에 드는 아이와 같습니다. 아이는 악몽으로 인해 조금 무서울 순 있겠지만 엄마와 아빠가 자신을 지켜준다는 것을 확실하게 압니다. 그래서 의인은 신앙에 대한 지식으로 자신이 죽을 때에 천주께서 자신을 지켜주신다는 것을 확신에 차서 소망합니다.

끝으로, 의인의 죽음의 결과를 봅시다. 야이로의 딸을 다시 고찰해 보세요. 아이는 죽었다가...그리스도께서 손을 잡아 주시자 깨어났습니다. 열두 종도들이 침대맡에 둘러서 있고, 아이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경외심에 싸여 딸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의로운 영혼이 죽은 직후의 모습입니다. 아이의 영안이 열리어 천주의 아름다움을 봅니다. 개선지회, 이미 천국에 있는 친척과 친구들이 의로운 영혼을 환영합니다.

그러니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합시다. 아름다움, 평화, 거룩한 죽음에 대한 소망에 부푼 마음을 안고 우리의 일상의 죄에 맞서는 더 큰 싸움을 향합시다.

+ 피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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