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2019 7.7. 성신 강림 후 제 4 주일, 샤잘 신부님 미사 강론
name : Arsenedate : 2019-07-14 08:52:03hits : 79
 

Married priests?

by Fr. Chazal

 

8th July 2019

 

 

Francis is not changing but for the worse.

Whatever is still standing, he will try to destroy, and one of these things is priestly celibacy, so he convoked a “synod” in Amazonia to produce a document legalizing the marriage of priests, and of course the ultra liberal german conference of bishops approved of the same a few days later.

 

프란치스코 교황은 변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빠지기만 합니다.

그는 서 있는 것은 무엇이든 파괴하려고 하는데, 그 중 하나는 사제 독신제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제의 혼인을 합법화하는 문서를 만들기 위해 아마조니아에서 “시노드”를 소집했습니다.

아마조니아 시노드에서 교황 프란치스코

그리고, 극 자유주의 독일 주교회의도 역시 며칠 후에 그것(사제의 혼인)에 찬성했습니다.

독일 주교회의

But this cannot change the nature of things, and marriage and priesthood can’t fit together, just as you can’t fit to chickens in one egg.

In marriage a man is taken over by his wife, who justly expects from him devotion, a great deal of his time, of his love, of his money.

How can a priest have his hands free to look after the things of God, and how can his heart be not divided as St Paul said famously, in I Cor VII?

 

그러나 이로써 사물의 본성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결혼생활과 사제직은 조화가 불가능합니다. 이는 마치 하나의 달걀에 여러 마리의 닭을 넣을 수 없음과 같습니다.

결혼생활에서 남자는 자신의 아내에게 점유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헌신과 많은 시간, 그리고 사랑과 돈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사제가 천주의 일을 돌보면서 다른 시간을 낼 수 있으며, 성 바오로께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칠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남자가 어떻게 그의 마음을 갈라지지 않게 보존할 수 있겠습니까?

 

 

 

 

It can only lead to a failed marriage and a half baked clergy, like the mere state employes of the schismatic anglican and orthodox clergies.

Hence orthodox schismatics don’t like to go to confession to their married priests, nor do they elevate them to the episcopate.

The other big problem is that this kind of clergy need more money for obvious reasons.

 

이는 성공회와 정교회의 사제들처럼 고작 공무원이나 다를 바 없는 어설픈 사제와 실패한 결혼생활로 이끌 뿐입니다. 그래서 정교회 분파의 신자들은 그들의 혼인한 사제들에게 고백성사를 보기 싫어하며, 그 사제들은 주교가 되지 못합니다.

또 다른 문제는 기혼사제들은 틀림없이 돈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Moreover, a priest must resemble Jesus-Christ, who was a lily of chastity and recommended “Eunuchs for the sake of the kingdom of God”, in the Gospel of today, don’t we read that the apostles pulled their boat and dropped their nets?

That means they dropped their wives whom those nets were supposed to provide.

Priestly celibacy quickly became the norm in the Roman Church, and priestly concubinage or “Nicholaism” was repeatedly fought against and overcome by great saints like St Peter Damian and St Gregory the 7th.

 

더군다나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정결의 백합이셨고, “천주의 나라를 위하여 고자가 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또한 오늘 복음에서 종도들이 그들의 배와 그물을 버렸다고 했지요?

그들이 그물을 버렸다는 말은 아내를 버렸다는 뜻입니다.

그물로 아내를 부양하는 것이니까요.

사제의 독신제도는 로마 교회에서 일찍이 규범이 되었습니다.

그 후 사제가 첩을 두는 악습, 즉, “니콜라이즘” 은 계속해서 공격을 받았고, 성 베드로 다미아노와 성 그레고리오 7세에 의해 근절되었습니다.

 

 

 

 

In Canon Law, any priest who allows a young woman in his rectory at night is deemed concubinary and loses his office after the monition of his bishop.

But there are higher reasons : the priest consecrates and manipulates the Holy Eucharist, so his proximity with the sacrifices calls for sanctifications, just as the priests of the old testament could not approach their wives a few days before the sacrifices of the old law.

 

교회법에 의하면, 야간에 사제관에 젊은 여성을 머물게 하는 사제는 그 여성과 내연관계로 간주되어 주교의 경고 후에 직무를 박탈당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제는 성체를 축성하고 손으로 만집니다.

이처럼 사제는 희생제물과 접촉해야 하므로 반드시 거룩해야 합니다. 이는 구약의 사제들이 옛 법의 희생제사 전 며칠 동안은 그들의 아내와 접촉할 수 없었던 것과 같습니다.

 

 

 

 

Chastity gives a shine, it is a virtue that brings beauty to the soul and proximity and conversation with God. We polish those wonderful candlesticks! Our chalice and ciborium are gold polish.

정덕은 빛을 발합니다.

정덕은 영혼을 아름답게 하며, 천주와 가깝게 해주고, 천주와 대화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촛대를 광냅니다.

우리의 성작과 성합은 금빛으로 윤이 납니다.

 

 

 

 

Hence it is no wonder that Luther eloped with a nun in 1525 in order precisely to destroy the priesthood, and so did all his followers. What underlies all this is a deep seated hatred of the Mass, in its latreutic(adoration) dimen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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