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윌리암슨 주교님의 Eleison Comments 제650호(소리높여 외치라!)
name : silviadate : 2019-12-31 06:17:48hits : 401
 소리높여 외치라!

20191228

650

대주교는 말하기를, “로마는 더 이상 로마에 있지 않다,”고 했다.
오늘날에는 가톨릭 신자들의 정신적 고향이 다른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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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비롯된 위대한 생각이 있다면, 명시적으로나 암묵적으로 천주의 문제를 의미하는 위대한 문제에 관해 생각해 왔을 것이기 때문이요, 그것들이 정말로 위대한 생각이라면, 그들의 사고(思考)가 파괴를 불러들이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영혼 하나는 확언하건대 영국의 셰익스피어였다. 가톨릭 신자인 셰익스피어는 1600년경 마침 전성기에 이르렀을 때 자기 나라의 배교가 실현되고 있는 것을 타개하려 고심했다. 그렇지만 잉글랜드의 개신교화는, 클레어 애스퀴스(Clare Asquith)2005년의 저서 <그림자극(Shadowplay)>에서 입증했듯이, 셰익스피어가 능지처참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가톨릭 메시지를 위장해야 했음을 의미했다. <그림자극>에서 클레어 애스퀴스는 영국의 애국자들과 잔챙이 문학 비평가들보다 영국 문학을 훨씬 높이 다루었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152에 관한 책의 부록을 보건대, 애스퀴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셰익스피어가 알고 있던 한 여인에게 명백하게 적용한 것 이면에, 마땅히 동포에게 경고했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못한 작가인 셰익스피어 자신에게 훨씬 더 폭넓게 적용되는 두 번째 의미가 어떤 식으로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기 14행으로 된 소네트를, 분명한 의미와 함께 실어 놓았다.

그대는 알리라, 나 그대를 사랑하면서 맹세를 저버린 것을

허나 그대는 나에 대한 사랑의 맹세를 두 번 저버렸도다,

소행으로 깨진 그대의 혼인 서약과 갈라진 새로운 믿음,

새로운 사랑을 품은 뒤에 새로운 증오를 다짐하며,

허나 두 번의 서약을 깨뜨렸다 하여 내 어찌 그대를 비난하리오?

나는 스무 번이나 깨뜨린 마당에. 내가 거짓 맹세를 가장 많이 했거늘,

내 모든 맹세는 서약이지만 결과는 그대를 악용하는 것일 뿐,

하여 그대에 대한 내 모든 정직한 믿음은 간 곳이 없도다,

나 그대의 가없는 친절에 굳게 맹세했나니,

그대의 사랑, 그대의 진실, 그대의 정절에 서약했나니,

또 그대를 돋보이려, 눈을 멀게 했도다,

아니, 그들더러 보이는 것과 반대로 맹세하라고 시켰도다.

나 그대를 아름답다고 맹세했다니, 더 많이 거짓 맹세한 눈이여,

진실을 등지고 그토록 더러운 거짓을 맹세했구나.

 

그대는 내가 그대를 사랑함으로써 약속을 어긴다고 알고 있지만,

그대는 날 사랑한다고 맹세함으로써, 두 가지 약속을 어기누나.

그대는 남편의 침대를 떠나, (‘새로운 믿음’, ‘새로운 사랑’)에게로

돌아섰거늘, 결과는 다시 그를 버렸을 뿐이라.

그러나 두 번의 서약을 깨뜨렸다 하여 내 어찌 그대를 비난하리오?

나는 스무 번이나 서약을 깨뜨린 주제이거늘. 나는 더 큰 거짓 맹세자,

나는 서약에 서약을 거듭하여 그대에게 해를 끼쳤나니

그대가 선하지 않다는 걸 잘 알았는데도 그대가 선량하다며.

그렇게 나는 맹세해 왔노라. 그대가 매우 상냥하다고

매우 애정이 깊고, 매우 진실하며, 매우 지조가 있다고,

또 잘 보이는 곳에 그대를 두려고, 나는 나에게 보게 했네

내가 보지 못한 것을, 아니, 눈이 본 것을 못 보았다고 맹세했지.

그대가 선하다고 내가 맹세했다니. 끔찍한지고

나의 거짓 맹세여, 그것은 그토록 허위인 것을!

흥미롭게도, 소네트의 문장은 셰익스피어의 부정한 연인을 언급하는 가운데 겉으로 보이는 의미보다 신앙이 없는 영국을 언급하는 가운데 숨겨진 의미를 들여다봐야 뜻이 더 잘 통한다. 따라서 900년 동안 메리 잉글랜드(Merrie Englande)’는 가톨릭교회의 충실한 아내였다. 헨리 8세의 수장령(Act of Supremacy, 1534)으로, (법령으로) 영국은 가톨릭교회와 혼인(혼인 서약)을 깨고 연인으로 개신교를 취했다. 그런 다음 영국은 메리 튜더(1553, 새로운 믿음’, ‘새로운 사랑)의 치하에서 가톨릭교회와 재결합했고, 결과는 엘리자베스 1(1558, 갈라진 새로운 믿음, 가톨릭교회에 대한 새로운 증오)의 치하에서 다시 개신교와 간음에 빠졌을 뿐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1564-1616), 예를 들어 자신의 역사극에서 영국에 해를 끼친 것(그대를 악용하는 것)이나 매한가지인 튜더의 통치자들과 더불어 영국을 거듭 찬미(그대를 돋보이려고)했다는 이유로, 훨씬 더 악하게 부정(不貞)을 저질렀다며 자책한다. 왜냐하면 그는 가톨릭 신자로서 개신교가 메리 잉글랜드를 몰락시키리라는 걸 완전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랬다!

그리고 오늘은 어떤가? 패턴이 반복된다. 1900년이 넘는 동안 가톨릭 신자들은 참된 교회에 충실하게 결합해 있었지만, 2차 바티칸(1962-1965)과 함께 신자들 대부분이 악한 지도자들을 따라 현대 세계와 사실상 간음(깨진 혼인 서약)에 빠졌다. 그 후 르페브르 대주교(1905-1991)는 많은 사람을 진정한 가톨릭교회(새로운 믿음’, ‘새로운 사랑, 아니 옛 신앙과 옛날 사랑의 회복)로 다시 이끌었으나, 결과는 1970년에 대주교가 설립한 성비오10세회 상부에 있는 대주교의 후계자들이 공의회 이전의 진리에 대한 새로운 증오로 공의회 로마와 재결합하기를 갈망하는 간음에 다시 떨어지는 것을 볼뿐이다.

결론은? 우리 가운데 셰익스피어, 또는 가톨릭 신자들은 누구라도 소리를 높여 외쳐야 한다. 파차마마 로마는 이처럼 피해야만 할 지겨운 추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Kyrie ele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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