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윌리암슨 주교님의 Eleison Comments 제646호(둘 다… 그리고…)
name : silviadate : 2019-12-03 11:04:48hits : 98
 둘 다그리고

20191130

646

전쟁을 벌이기 위해서는, 좋은 무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적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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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멘트의 쟁점이 현대 문제를 다루는 것들과 가톨릭 해결책을 다루는 것들로 광범위하게 나뉠 수 있는 경우, 많은 독자가 문제에는 관심이 있지만 해결책에는 관심이 없거나, 해결책에는 관심이 있지만 문제에는 관심이 없다면 참 딱할 것 같다. 이는 특히 천주께서 당신의 원수들이 교회를 거의 다 파괴하도록 전대미문으로 허락하고 계시는 오늘날, 내가 해결책 없는 문제를 알고 있다면, 심하게 절망하고 싶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해결책에 대한 지식으로 인해 내가 잘못 생각하거나 문제를 과소평가하게 된다면, 그 문제가 나의 미숙한 방어책 주위를 맴돌다가 불시에 나를 공격하기 쉽다.

성 바오로는 둘 다를 알았던 데다가 신약의 해결책, 즉 예수 그리스도(7,24-25)를 지극히 잘 이해한 사람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왜냐하면 바로 성 바오로는 죄인들이 구약으로 만들었던 것의 문제에 준하여 열렬한 바리사이인이었기 때문이다.(코전 15,8-10) 그러므로 성 바오로가 그리스도께서 신약으로써 인류에게 가져다주신 구원을 그토록 깊이 이해한 것은 바로 그가 구약으로는 죄를 용서할 힘이 없음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 교회의 가장 위대한 가톨릭 진리의 종 중 한 분이 되기까지 여러 해 동안 오류에 빠져 있었던 것에서 덕을 입은 또 다른 개종자는 성 아우구스티노였다. 프랑스인들에게 한 사람의 개종자는 두 종도의 가치가 있다,”는 속담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가톨릭 신자들이 오늘날 천주의 원수들에 대해 아는 것이나 천주의 원수들이 천주께 어떻게 대들고 있는지에 대해 아는 것을 경멸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싸움이 아무리 고약해도 말이다. 그리고 가톨릭 신자가 아닌 자들은 가톨릭교회를 경멸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왜냐하면 가톨릭교회가 아무리 짓밟히는 것처럼 보여도, 가톨릭교회는 몹시 인간적인 문제처럼 세상의 그 어떤 실제 문제에 대해서도, 유일한 참된 해결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는 모두 인간의 영혼 안에서 천주에 대항하여 고개를 쳐드는 독이 든 죄의 결과이다. 정신과 의사가 아닌 천주만이 용서로써 그것을 꿰뚫을 수 있다. 천주는 당신의 천주 성자를 통해서만 용서를 베풀어 주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교회는 천주 성자의 성혈이라는 값을 치르고 용서를 샀다.

다음으로 이 코멘트의 비 가톨릭 신자들에게 현대 미술이나 정치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2차 바티칸이 어떻게 잘못됐는지, 또는 성비오10세회가 어떻게 점점 더 2차 바티칸을 따라가고 있는지와 같이, 가톨릭 신자끼리의 단순한 언쟁으로 보일 수 있는 논쟁에 관심을 가지라고 제안해야겠다. 이는 가톨릭교회가 모든 독자의 진짜 문제의 유일한 참된 해결책인 게 당연한데도, 죄인들은 그 해결책을 끊임없이 위조하기 십상이며, 그것이 위조되면 더 이상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 2차 바티칸은 인간을 천주의 자리에 두려는 수 세기 인류의 논리적 절정이었다. 그리고 성비오10세회는 2차 바티칸의 오류에 저항하고자 1970년에 설계되고 설립되었거늘, 2012년부터는 특히 그런 오류의 파멸적 매력의 지배를 받고 있다. 그러므로 자신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현대의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는 비 가톨릭 신자들은 2차 바티칸과 성비오10세회에 대한 논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코멘트의 가톨릭 독자들에게는 현대 세계와 일치하려는 2차 바티칸과 성비오10세회의 위험한 헛발질에 관한 논쟁뿐만 아니라 그 세계에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에도 관심을 가지라고 제안해야겠다. 과연 성비오10세회 지도자들이 이런 식으로 헛발질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그 세계의 문제를 과소평가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적을 모르는 채 전쟁을 벌임으로써 패배로 향하고 있지 않은가? 르페브르 대주교는 한때 2차 바티칸 전체가 주관론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거늘, 펠레 주교는 한때 2차 바티칸 문서의 95%가 용인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또 대주교는 여러 표현을 써서 자주 말하기를, 오늘날의 공의회 로마인들과 식사하려면 긴 숟가락이 필요하다(역자: 교활한 상대와 싸우게 된다면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고 했건만, 펠레 주교 감독의 후임자는 마치 로마의 악마들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펠레 주교의 본보기를 따르고 있지 않은가? 대주교의 진정한 강점은 결코 그의 영리함이 아니라 항상 그의 신앙, 그리고 가톨릭 진리에 대한 충실함이었다. 그리고 대주교가 세운 성비오10세회도 마찬가지다. 다음으로 이 코멘트의 가톨릭 독자들이여, 고찰이 아무리 싫더라도, 현대의 부패에 대한 코멘트의 분석을 고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모래 속에 머리를 박을(역자: 현실을 회피할) 형편이 아니니 말이다.

Kyrie ele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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